LG 트윈스 라뱅 이병규 현역 은퇴


프로필


1974년 10월 24일생

청구초 - 서대문중 - 장충고 - 단국대

1997년 LG 트윈스 입단(1차지명)

2007년 일본 주니치 입단

2010년 LG 트윈스 복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국가대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금메달)

1999년 한일 수퍼게임 국가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동메달)

2001년 야구 월드컵 국가대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금메달)

2006년 WBC 국가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동메달)


메달리스트로 연금 소득자이자 국가대표를 밥먹듯이 하던 대표 외야수


2016년 10월 8일 

LG 트윈스의 2016시즌 최종전

시즌 내내 2군에 머무르던 이병규를 콜업한다.

이날도 그는 선발 출장하지는 않았지만

4회말 LG 트윈스 공격 때 8번 타자 자리에 대타로 등장해서 안타를 치고

다음회 수비 때 교체 아웃

시즌 기록 1타수 1안타로 마무리


화려했던 그의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는 그렇게 끝이었다. 



출처 : KBO 홈페이지

이병규 KBO 통산 기록


1997년 신인왕, 골든글러브 외야수

1999년, 2000년 최다안타 1위, 골든글러브 외야수

2001년 최다안타 1위, 득점 1위, 골든글러브 외야수

2004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2005년 최다안타 1위, 타율 1위, 골든글러브 외야수

2011년 올스타전 MVP

2013년 타율 1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신인왕을 시작으로 골든글러브 외야수 6회, 지명타자 1회

타격왕 2회, 최다안타 3회, 올스타전 MVP까지


프로통산 2,000안타 달성


10연타석 안타 기록 보유


최고령 사이클링히트 기록


국내프로야구에서 못해본건 우승 빼고는 없는 듯!

97년, 98년, 2002년 준우승만 세번.

이게 아마 그의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NPB 통산 기록

3년 265경기 1063타석 997타수 253안타 28홈런 119타점 타율 .254 출루율 .290 장타율 .386 OPS .676


LG에서 활약이후 FA 자격을 얻고 일본 주니치와 3년 계약하며 건너갔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주니치 입단 1년차와 2년차는 주전으로 꾸준히 출장했지만 마지막해인 2009년은 28경기 출장에 그쳤고 

이후 다시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주니치 시절 1년차에 그의 재팬시리즈에서 프로통산 첫 우승까지 맛보았으나

그의 커리어에서 이 3년은 아마도 최악의 시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8년 후지카와 큐지에게 뽑아낸 끝내기 쓰리런

일본시절 유독 쓰리런을 많이 쳐서 라뱅쓰리런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


일본 시절은 조금 아쉽지만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 이병규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던 선수이다.


타팀 팬이지만 이병규의 은퇴가 아쉽다.

어쩔수 없는 흐름이겠지만

성대한 은퇴식이 필요한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2017년 프로야구 FA 

- 삼성라이온즈 차우찬 -


프로필


1987년 5월 31일생

좌투좌타

군산초 - 군산남중 - 군산상고

2006년 삼성라이온즈 입단(2차 1라운드 7순위)

2013년 제 3회 WBC 국가대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금메달)

2015년 프리미어12 국가대표(우승)


2014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병역면제

이빨이 마구 빠져버린 삼성의 에이스

2017년 FA 투수 최대어 3인방 중 하나

메이저와 일본 진출 타진 중

삼성에 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지는 차우찬의 진로는?




출처 : KBO 홈페이지


2010년 KBO 승률 1위

2015년 KBO 탈삼진 1위

2011년 ~ 2014년 삼성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


팀 우승 기록도 많고

커리어에 1위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다.



출처 :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 갤러리


차우찬 연봉 추이


2006년 계약금 1억5천만원 연봉 2천만원

2007년 2천1백만원

2008년 2천5백만원

2009년 3천3백만원

2010년 6천2백7십만원(디테일쩐다)

2011년 1억5백만원(개인 통산 첫 억대 연봉 진입)

2012년 1억7천만원

2013년 1억3천만원

2014년 2억4천만원

2015년 3억원

2016년 4억원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15년 탈삼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구위가 훌륭했다. 

스탯으로 보기에는 김광현이나 양현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주위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듯.

내구력은 김광현이나 양현종 보다는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한급 아래의 투수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입단 이후 바로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잠깐이었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팀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선발로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이후 계속해서 1군 무대에서 선발과 불펜으로 활약


완벽하게 선발투수로 활동한건 2011년과 최근 2년 밖에 없다.

무엇이 그를 매력적인 투수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


좌완에 140키로 후반의 구속을 보이는 직구

통산 기록으로 볼 수 있듯 볼넷도 많고 삼진도 많이 잡는 유형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상당히 고평가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KBO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이 콩깍지를 씌워주고 있는게 아닌가 했는데

메이저에서도 일본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언플이 아니라면 내가 차우찬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야알못이겠찌 ㅋ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긴 했지만

4점대 후반의 방어율에서도 보이듯 풀리는 날과 풀리지 않는 날이 차이가 많이 나는 투수


제구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긁히는 날과 긁히지 않는 날의 차이가 명확한 투수


내가 보는 차우찬은 이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로 와준다면 땡큐기는 하지 ㅋㅋ


좋을 때의 모습만 유지한다면 매력적이기는 함이 분명한데

내구력을 바탕으로 언제든 투입가능한 불펜으로 해외 진출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이에도 해외에서 딱히 모시고 갈만한 이유는 없어보인다.


KBO에 남아있으면 쓰임이 많은 선수임에는 분명하고

시장 상황도 유리하니 국내에서 계약하면 좋은 계약이 가능할듯! 


4년 70억에서 80억 가량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2017년 프로야구 FA 

- 롯데자이언츠 황재균 -



프로필

1987년 7월 28일생

사당초 - 이수중 - 경기고

우투우타


2006년 현대유니콘스 입단(2차 3라운드 24순위)

(현대유니콘스 - 우리히어로즈 - 넥센히어로즈) - 롯데자이언츠

팀을 엄청 경험한거 같지만 그냥 두팀 ㅋ


2007년 야구월드컵 국가대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병역 혜택)

2015년 프리미어12 대표


포지션 : 3루

유격수로 데뷔했으나 강정호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3루수로 완전 전향

어찌보면 이게 신의 한수

유격수로서는 수비 범위가 좁다는 평가가 많았었는데

2009년 정성훈이 LG로 이적하면서 3루수로 완전하게 정착

이후 롯데로 이적해서 잠시 유격수로 나왔던 때도 있지만 역시나 

3루가 맞다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기회였다. ㅋㅋ



출처 : KBO 홈페이지


주요 기록

2012년 KBO 올스타전 MVP

2015년, 2016년 2년 연속 26홈런 이상 기록

2015년 통산 1,000안타 달성

2015년 올스타전 홈런더비 우승

2016년 통산 100홈런 달성 

연속경기 출장 기록 역대 3위(618경기)


입단 시즌인 2006년을 제외하고 2007년부터 프로 무대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여

주전 자리를 늘 꽤차고 있으며 강한 어깨와 내구력은 꾸준하고 해마다 타격 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선수


2010년 7월 20일 넥센과 롯데의 1(황재균) : 2(김민성, 김수화) 트레이드로 롯데로 이적

하위타선에 주로 자리하던 선수였지만 2015년과 2016년 시즌 제대로 포텐이 터진 케이스


출처 : 스포티비

빠던으로 이미 월드스타


2015년 시즌 이후 손아섭과 함께 포스팅에 도전

무응찰이라는 수모를 당하지만 이는 사실 수모라고 할만하지도 않았던게 

KBO에서도 이룬 업적이 거의 없었고 2015년에 와서야 터지기 시작한거니 

차라리 먼저 신청한 손아섭이 진출했으면 욕먹지도 부끄럽지도 않았을텐데... 


뭐 이게 선수의 목표와 의지를 승부욕을 더 자극시킨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2016년 타고투저 타고투저 말들이 많기는 했어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던 삼진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타석수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2015년 대비 거의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었고

삼진수로는 2009년 이후 가장 좋아졌지만 비율로는 데뷔 후 가장 좋은 시즌을 보냄

장타력도 계속해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홈런과 타점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면서 

이제 전성기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


연봉 추이

2006년 계약금 6,000만원 연봉 2,000만원

2007년 2,000만원

2008년 2,800만원

2009년 4천만원

2010년 1억원

2011년 1억원

2012년 1억5천만원

2013년 1억8천만원

2014년 1억9천만원

2015년 3억1천만원

2016년 5억원


최근 어제구나 22일 MLB 쇼케이스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작년 포스팅 실패에 이어 FA 자격을 취득하고 재도전하는 그에게 어떤 제안이 들어올지

상당히 궁금해진다. 


누적 스탯으로야 FA 최대어로 꼽히는 최형우의 스탯에 비할바가 못 된다 치지만

최형우보다 4살이 어리고 이제 갓 전성기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아주 좋은 플러스 요인이 될듯하다. 

3루 수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지만 2015년 시즌부터 향상된 파워는 점점 더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3루에서 1루로 송구하는 모습이 가장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수비면에서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더라도 경쟁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국내에 잔류한다면 최소 80억 이상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해외냐, 국내 잔류냐

대한민국의 섹스머신이 메이저리그의 섹스머신이 되기를 나는 개인적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2015년 황재균 홈런더비 영상과 테임즈의 올스타전 때 인터뷰로 마무리

두산 베어스 홍성흔 은퇴 발표


프로필

1977년 2월 28일생

강북리틀 - 중앙중 - 중앙고 - 경희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동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

2006년 WBC 대표팀


포수로 입단해서 수준급의 수비 능력을 보여줬고

2008시즌 이후 부상과 본인이 차후에 밝힌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수비는 놓게 되었지만 타격 능력만큼은 인정해줘야 되는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두산팬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는 레전드의 기록을 가진 레전드가 아닌 선수로

은퇴하게 되었지만 은퇴를 결정한 선수에게까지 욕까지 하며 보낼 필요는 없을듯 하다.



홍성흔 통산기록(출처 : KBO 홈페이지)


1999년 두산 입단(1차 지명) 신인왕

2004년 KBO 최다안타 1위

2008년, 2009년, 2010년 3년 연속 KBO 타율 2위

2010년 KBO 타점, 안타 2위

2001년, 2004년 골든글러브 포수상

2008년 ~ 2011년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지명타자상

2006년, 2010년 올스타전 MVP


커리어만 읊어도 한참이 걸릴정도로 기록으로도 박수 받으며 떠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

아쉬운게 있다면 2,000경기 출장까지 43경기가 남았다는 것 정도일려나?

프로야구 선수로서 통산 타율 3할이 넘고 심지어 잠실을 홈으로 쓰던 선수가 200홈런도 넘기고

통산 1,000타점 2,000안타에 3,000루타 어마어마하다.


똑딱이라고 병살타가 많다고 욕하는 팬들도 많다.

물론 이외에도 욕먹을 이야기들이 상당하긴 하다.

뭐 물론 내가 제 3자의 입장으로 타팀팬으로서 바라봐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두산에서 보낸 말년만 보고 욕만 하기에 그가 쌓아온 업적은

너무 훌륭하다.


18시즌 동안 쌓은 기록이지만 저 정도의 기록을 올린 선수는

프로야구사를 통틀어봐도 단 몇명 밖에 기록하지 못한 누적 스탯이다.


특히 2008년 ~ 2010년 까지 기록한 3년 연속 .330 이상의 타율은 최초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2009년에 기록한 타율 .371 역대 KBO 8위의 기록이다.


출처 : 두산베어스 페이지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나 사실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인데

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상당히 많지만 기록만큼은 레전드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은퇴 전문에서 이야기한것처럼 열정적인 선수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두산팬들에게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까지 건너버린 선수로 기억될듯하다.

결론은 진짜 말년이 아쉬운 선수임에 분명하다.


어디가서 뭘 하더라도 특유의 친화력과 말빨로 잘 헤쳐나갈듯 하지만

프로야구 팬으로서 이 정도의 기록을 가진 선수가 받는 대접이 너무도

가혹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타팀팬이니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하고

타팀 팬으로 그가 잘하고 오바스럽게 행동할 때 짜증이나기도 했지만

아쉽긴 아쉽다.


그냥 난 오늘 하나의 교훈을 더 얻었다.

어디서나 언제나 입조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역사 그리고 2017년 후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란?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앞글자를 따서 HoF 라고도 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사람들을 HOFer 라고도 한다.


야구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간으로

선수뿐만 아니라 역사에 남을 선수, 감독, 해설자, 커미셔너 등이 모두 그 후보다.


명예의 전당은 언제 어디에 세워졌나? 

1936년 뉴욕주 쿠퍼스타운

 야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고 하지만 이는 만들어낸 이야기였다는...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 기준은?

메이저리그 선수 기본 조건은

최소 10년 이상 뛴 선수로 은퇴 후 5년이 지난 선수가 대상


명예의 전당 초기에는 은퇴 선수뿐만 아니라 현역 선수들까지 모두 그 대상이 되었지만

차차 그 규칙이 확립되어 현재는 메이저리그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 관계자, 감독 그리고

인종차별로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다.


후보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결정하는가?

기준에 부합하는 선수들을 매년 11월말 미국야구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이 투표하여 결정한다.

10년 이상 활동한 기자가 최대 10명의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명예의 전당 투표 용지

기자단 투표 결과 75% 이상의 득표를 한 후보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5% 이하의 득표를 한 후보는 명예의 전당 후보에서 제외된다.

5% 이상 75% 이하의 득표를 기록하면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유지된다.

2014년 이전까지는 재도전의 기회가 15년까지 였으나 

2015년 부터는 10년으로 변경 되었다.

2014년에 이미 10년을 넘어간 후보는 예외적으로 15년까지 기회가 유지된다.


이외에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되는 방법이 있다.

구단 관계자, 감독, 심판의 경우는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서만 헌액되고

5%이상 75%이하의 선수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되기도 한다.


헌액식은 언제?

이듬해 7월말 명예의 전당이 있는 뉴욕주 쿠퍼스 타운에서 열린다.

헌액식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

헌액식을 전후로 3~4일 동안 헌액 선수들의 퍼레이드나 대담등이 개최된다.

아우... 이것도 가보고 싶다...ㅠㅠ 

2015년 헌액 선수들의 동판

2015년에 헌액이 결정된 비지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


2016년 켄 그리피 주니어는 역대 최고 득표율 99.3% 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


2017년 명예의 전당 투표 일정

2016년 12월 31일 까지 우편으로 투표

2017년 1월 19일 발표 예정


2017년 명예의 전당 후보

출처 : http://www.baseball-reference.com/


기존 자격 유지 후보 15명 + 신규 자격 후보 21명

올해는 과연 누가 입성하게 될까!

작년 켄 그리피 주니어처럼 압도적인 표를 받으며 입성할만한 선수가 보이지는 않지만

작년에 아쉽게 헌액되지 못한 선수들 가운데는 제프 배그웰, 팀 레인스, 트레버 호프만 정도가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새롭게 후보가 된 선수들 중에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이반 로드리게스 정도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매니 라미레스도 처음으로 후보에 등록은 되었지만

로저 클레멘스나, 새미 소사, 베리 본즈 등과 함께 약물에서 자유롭지 못한 선수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많은 후보가 있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선수 중에는 작년에 후보에 오를 것이라 예상했던 박찬호가 아쉽게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었지만

향후 추신수선수가 은퇴하면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를 볼 수 있을듯 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득히 먼 이야기지만 말이다. 


2017년 프로야구 FA

 - 삼성라이온즈 최형우 -

 

프로필

 

19831216일생

 전주진북초 - 전주동중학교 - 전주고등학교

 2002년 삼성라이온즈 입단(2차 6라운드 48순위)

2005년 12월 ~ 2008년 1월 경찰야구단

2008년 신인왕

2011년 KBO 타점왕(118타점), 홈런왕(30홈런), 장타율 1위(.617)

2016년 타율(.376), 타점(144타점), 안타(195개) 1위

 

2016년 8월 18일 싸이클링히트

역대 21번째 사이클링 히트까지 달성


2017FA 선수들 중 현재까지 계약까지 체결한 선수는

두산 베어스 김재호 - 450(인센티브 4)

기아 타이거즈 나지완 - 440

처음으로 타팀과 계약한 삼성라이온즈 이원석 - 4년 27억

위 세명의 선수 밖에 없다.


오늘은 이번 FA 타자 최대어로 손꼽히는 삼성라이온즈 최형우에 대해 준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최형우가 받고 싶다고 했던 120억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120억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어떨까?


출처 : KBO 홈페이지

 

고졸 선수로 프로 무대에 데뷔해서 초반에는 상당히 초라한 성적들을 남기고

2005년 시즌 삼성에서 방출이후 경찰야구단에 입단하였다.

2006년 경찰야구단 소속으로 2군 무대에서 .344 11홈런 44타점

2007년 .391 22홈런 76타점 북리리그 타격 3관왕


삼성으로 입단할 때 포수였던 포지션을 경찰야구단에서 외야수로 전향 

최형우의 야구 인생은 이때부터가 제대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찰야구단을 전역하고 다시 프로 1군 무대로 복귀한 2008년 그의 포텐셜은

서서히 터지기 시작한다. 


복귀이후 2008년 시즌부터 2016년 시즌까지

9년 연속 100안타 거의 모든 기록이 이 9년 동안 달성한 기록이다.

2008년 늦깎이 최고령 신인왕을 시작으로

2016년 FA 마지막 시즌을 채우고 있던 최형우는 커리어 통산 최고의 기록을 세운다.

타점, 타율, 안타 리그 1위 기록하며

전성기에 제대로 들어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봉 추이

2002년 계약금 5천만원 연봉 2천만원

2003년 2천만원

2004년 2천만원

2005년 2천1백만원

2006년, 2007년 경찰야구단

2008년 5천만원 + 100만원(교통비?) ㅋㅋ

2009년 1억원

2010년 1억3천5백만원

2011년 1억8천5백만원

2012년 3억원

2013년 2억8천만원

2014년 4억5천만원

2015년 6억원

2016년 7억원

 

프로야구에서도 이런저런 성공 스토리가 많지만

입단이후 줄 곧 2군 생활만하던 선수가 방출이후 포텐이 터지고

다시 복귀하여 이런 스토리를 써낸 것은 최형우가 유일할 것이다. 


올시즌 연봉 7억원과 보상선수의 늪이라는게 있어

타구단이 영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FA 최형우의 기록과 실력 그리고 9년 연속 100안타 이상의 꾸준함

매년 110경기 이상 출전의 내구력까지 감안한다면 영입하고 싶어하는 구단이 상당할 것이다. 


뭐 난 기아팬이니까 기아에 와주길 바라지만 ㅋ


해외 진출설도 많이 돌고 있는 지금 과연 그의 진로는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기아 어때요~!?♥



2016년 11월 24일 목요일 내용 추가!!!!

최형우 기아 4년 총액 100억 계약 체결

계약금 40억 연봉 15억


출처 : 기아타이거즈 홈페이지


감사합니다~♥

 

 

2017년 프로야구 FA 

- 두산 베어스 이원석 -


프로필

1986년 10월 21일생

광주학강초 - 광주동성중 - 광주동성고

2004년 봉황대기 타격상

2005년 롯데 입단(2차 2라운드 9번)

2008년 시즌 이후 두산으로 이적(FA 홍성흔 보상선수)

2010년 대륙간컵야구대회 국대

2014년 10월 ~ 2016년 9월 상무

 

2017년 FA 선수들 중 현재까지 계약까지 체결한 선수는

두산 베어스 김재호 - 4년 50억(인센티브 4억)

기아 타이거즈 나지완 - 4년 40억

위 두명의 선수 밖에 없었다.


11월 11일부터 시작 되었으니 오늘이 11째 되는 날인데

예년에 비해 속도가 상당히 느린편인듯하다 싶더니 2017 프로야구 FA 세번째 계약자가 나왔다.


출처 : 유튜브 베어스포티비


바로 두산 베어스 이원석이다.


계약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와

4년 총액 27억 계약금 15억, 연봉 3억이다.

생각보다 좋은 계약인듯하다.

알짜 선수이기는 했지만 그 동안의 커리어나 상무에서 복귀하고 2016시즌 후반 복귀해서

7경기 출전 기록을 제외하면 최근 표본은 2군 기록 밖에 없는데 

그 동안 내부 FA 잡기도 제대로 못하던 삼성에서 과감한 결정을 한듯. 



출처 : KBO 홈페이지


2005년 입단 시즌부터 출장하기 시작해서 꾸준히 1군 무대에서 활약했던 선수이고

비록 2년간 2군 무대에서만 활동했지만 복귀이후 보여준 모습은 아주 훌륭했다.


KT로의 이적을 예상했었는데 삼성이라 조금 뜬금없기는 하지만

삼성은 이번 이원석 영입이 2005년 이후 외부 FA 영입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원석을 영입하려고 11년을 기다린건가~ ㅋ 

삼성도 그냥 영입한 것 같지는 않다.


만으로 이제 30세이고 주포지션이 3루이기는 하지만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하니 삼성에서도 유틸리티플레이어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보상선수가 무엇보다 궁금해진다! ㅋㅋ

보상선수 무서워서 FA 영입이 쉽지 않은 판이니

이원석 입장에서는 정말 잘한 계약임에 분명하다. 


이원석 연봉 추이

2005년 계약금 1억3천만원 연봉 2천만원

2006년 연봉 3천만원

2007년 5천5백만원

2008년 6천8백만원

2009년 6천8백만원

2010년 1억 5백만원

2011년 9천 4백만원

2012년 8천 4백만원

2013년 1억원

2014년 1억 5천만원

2015년, 2016년 상무


전역하자마자 계약금 15억의 보너스에 안정적으로 4년동안 3억의 연봉까지 챙겼으니

내년에는 더 잘하겠지? 잘해야지. 잘해야된다.


27억을 주고 영입한 선수를 백업으로 쓰지는 않을테니

두산에서 제대로 포지션 차지도 못하고 있을바에는 주전으로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는 팀이 좋기는 하다. 

헌데 삼성에서는 과연 어떤 포지션이 주가 될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탐나는 선수였던지라 기아에서 영입하길 내심 기대했는데

기아는 이범호가 3루를 떡하니 지키고 있기도 했고 보상선수도 무서워서 당연히 못온다 생각했었고

그나마 가장 가능성있는 팀이 KT가 아닐까 했는데 뜬금포로 전혀 생각지도 않던 삼성의 영입은 놀랍기는 하다.

이래서 FA 시장도 아주 흥미롭다.

야구는 쉬고 있지만 그나마 이 FA 시장이라도 있어서

겨울이 조금 지낼만 하다.


다음 계약자는 누가 될지 궁금 또 궁금하다!!! 

2017 World Baseball Classic(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 

대회 기간 : 2017년 3월 7일 ~ 2017년 3월 22일

주관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사무국


역대 대회 우승국

2006년 일본(MVP : 마쓰자카 다이스케), 한국 4강

2009년 일본(MVP : 마쓰자카 다이스케), 한국 준우승

2013년 도미니카(MVP : 로빈슨 카노), 한국 1라운드 탈락


첫 개최는 2006년이었는데 월드컵과 시기가 맞물려

2회 대회를 2009년에 월드컵 보다 1년 먼저 개최

이후 4년에 한번씩 대회가 열린다.


2017 World Baseball Classic(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 참가국은

2017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팀 그리고 퀄리파이어 팀

2017년 WBC는 세계 총 28개국이 참가하고

이 가운데 2013년 WBC 3위 이상 국가 12팀은 본선으로 직행하고

퀄리파이어 팀 16개 국가 가운데 예선을 뚫고

호주, 이스라엘, 콜롬비아, 멕시코가

16팀의 클래식 팀에 합류했다.

2017 World Baseball Classic(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

1라운드는 서울 고척돔, 도쿄 도쿄돔, 마이애미 말린스파크, 멕시코 과달라하라 할리스코

2라운드 도쿄 도쿄돔,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마지막 라운드는 로스엔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개최된다.


A조 이스라엘, 대한민국, 네덜란드, 대만

B조 일본, 쿠바, 호주, 중국

팀간 1경기씩 총 3경기를 치뤄 상위 1,2위 팀이 2라운드 진출

필요하면 플레이오프가 치뤄질 수도 있다


대한민국 경기 일정만 보면

2017년 3월 6일 19시 vs 이스라엘

2017년 3월 7일 19시 vs 네덜란드

2017년 3월 9일 19시 대만


무난히 2라운드 까지는 진출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어찌될지는 또 뚜껑열어 봐야 되니까 섣부른 기대는 금물! 

C조 캐나다, 도미니카, 콜롬비아, 미국

D조 이탈리아, 멕시코, 푸에르도리코, 베네주엘라

마찬가지로 상위 1,2위 팀이 2라운드 진출

필요하면 플레이오프가 치뤄질 수도 있다

2라운드 방식

A,B조 1,2위 팀이 한조(E조)

C,D조 1,2위 팀이 한조(F조)

1라운드와 같은 방식으로 각조 1,2위 팀이 

챔피언십라운드 진출

여기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플레이오프가 치뤄질수도 있다


챔피언십라운드

E조 1위 - F조 2위 VS E조 2위 - F조 3위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2017 WBC 우승팀은 어디가 될지 궁금하다!!!!

시즌을 코앞에 두고 치뤄지는 대회이기 때문에 각 나라의 주요 선수들이 부상을 우려하여

다 참가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받는 대회임에는 분명하다.


이번이 4회 대회로 아직 그 역사는 짧지만

주관하는 곳이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이기도 하니

향후 점점 더 대회의 질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밌겠따!~!~!~!~!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이란?

1998년 MLB 사무국과 NPB 사이에 체결된 선수 이적 절차


이 시스템의 도입은 NPB 선수가 MLB에 진출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해 도입되었으나

현재는 NPB를 제외한 해외 프로야구팀 소속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때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포스팅에 공시된 선수에 대하여 가장 높은 포스팅 금액을 써낸 팀이

선수와의 협상 권한을 가져가게 되는 시스템으로

포스팅 금액은 선수의 이적이 승인되어 낙찰될 때 공개된다.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의 시초

1964년 - 최초의 일본인 메이저리거 무라카미 마사노리의 이적 문제로 분쟁이 시작됨

1967년 - MLB사무국과 NPB 사이에 미국과 일본간 선수 협약 체결

NPB 구단에 소속된 현역 선수는 손대지 않는다 라는 불간섭원칙을 골자로 하는 상호 노동협약을 통해서만 이적할 수 있다는 협약 내용을 체결하였으나 이후 1990년대 이전까지 MLB 진출을 시도한 사례는 없었음.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도입 개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역이 아닌 선수는 이적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이용해

 1994년 노모 히데오, 1998년 알폰소 소리아노가 NPB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FA자격을 얻어 MLB로 넘어가게 되었다.

1997년에는 이라부 히데키가 뉴욕 양키스로의 이적을 요청했으나 

지바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노동 협약을 맺었으나

이에 반하며 결국 트레이드형식으로 뉴욕 양키스 보내졌다. 

이러한 과정들에서 에이전트 돈 노무라가 영향을 끼쳤다.



포스팅 시스템의 장점

선수가 원하고 구단이 동의해야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하루하도 빨리 더 큰 무대로 진출하기를 원하고

구단 입장에서도 FA로 풀렸을 때는 이적료를 10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적료를 받을 수 있을 때 보내는 제도인 포스팅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KBO선수의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이적

2001년 정식으로 포스팅 시스템 도입

국내 프로야구 선수는 7시즌을 채워야 포스팅 시스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일본의 경우는 1시즌만 채워도 가능!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이적하게 되면 임의 탈퇴 신분이 되기 때문에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에는 다시 원소속구단으로 돌아가야하고

4년을 채워야 FA 자격을 얻게 된다.

한시즌 한팀에서 한명만 해외진출 가능

2015년 롯데에서 두 명이 도전했다가 실패

선빵 날린 놈이 성공했으면 두번째는 자동으로 자격이 없었을텐데 

결론은 둘 다 실패!!!


포스팅 시스템 절차

KBO가 MLB 사무국에 해당 선수에 대한 포스팅 신청

|

MLB 사무국 업무일 기준 4일동안 비공개 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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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결과 통보(최고액만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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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에서 최고액에 대한 결과 통지

|

통지 후 4업무일 이내 결정

|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냥 끝

받아들이면 최고액을 써낸 팀을 알려주고 포스팅 비용을 우선 지불한다. 

이후 그 팀과 해당 선수는 30일간 협상을 하고 계약을 할 수 있게 된다. 

30일이 넘어가거나 협상이 결렬될 경우 포스팅은 자동으로 파기

모두 없었던 일이 된다.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의 단점

NPB의 경우에는 포스팅 상한 금액 2,000만달러를 제시한 팀이 여럿일 경우

그 팀들과 협상을 해서 가장 좋은 제안을 한 팀을 선택할 수 있지만 

KBO 선수의 경우 승자 독식 구조이기에

최고액을 제시한 한개 구단과만 협상할 수 있어 

연봉 협상 과정에서 선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물론 무엇보다 그에 우선하여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주는게 우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역대 국내 프로야구 선수 메이저리그 포스팅 사례


1998년 이상훈(LG) - 보스턴 레드삭스(60만달러) , 수용 거부

2002년 진필중(두산) - 무응찰

2002년 진필중(두산) - 2만5천달러(비공개), 수용거부

2002년 임창용(삼성) - 65만달러(비공개), 수용거부

2009년 최향남(롯데) - 101달러(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너리그 계약

2012년 류현진(한화) - 2573만7737달러33센트(LA다저스), 6년 3,600만달러 계약

2014년 김광현(SK) - 200만달러(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협상결렬

2014년 양현종(기아) - 비공개, 수용거부

2014년 강정호(넥센) - 500만2015달러(피츠버그 파이어리츠), 4+1년 최대 1,650만달러 계약

2015년 박병호(넥센) - 1285만달러(미네소타 트윈스), 4+1년 최대 1,800만달러 계약

2015년 손아섭(롯데) - 무응찰

2015년 황재균(롯데) - 무응찰


LG 트윈스 국민 노예 정현욱 은퇴


오늘 오전 정현욱의 은퇴 기사가 떴다... ㅜ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의 선수가 아니지만 

삼성이 잘나가던 시절 중간에서 엄청나게 던져대던 그의 구위는

최고였다고 생각했고 사회인 야구를 하는 나는 커브의 그립을 정현욱의 커브로 선택해서 

던졌었기에 그의 은퇴가 뭔가 모르게 더 아쉽다.


정현욱 프로필

1978년 12월 2일 경북 고령 출생

장안초 - 건대부중 - 동대문상고(현 청원고)

1996년 삼성라이온즈 입단(2차 3번)

2009년 WBC 국가대표(국민 노예가 되었던 대회)

2012년 LG 트윈스로 이적


출처 : KBO 홈페이지

통산 51승 44패 24세이브 89홀드

2002년 삼성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

2011년 삼성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

2012년 삼성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

삼성의 우승에 3번이나 기여했다.


2009년 WBC 국가대표 5경기 10.1이닝 2실점 방어율 1.74


그는 삼성에서 전성기를 거의 다 보내고 2012년 시즌이 끝난 후에

FA로 LG로 옵션 포함 4년 총액 최대 28억 6천만원에 이적을 했다.

이때 좋은 계약으로 LG로 이적했지만

어려웠던 시절이 참 많았던 선수로 기억된다. 


1998년 프로 입단 후 1군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게 2000년인데

2002년부터 많은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하며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2004년 병역파동 당시 8개월을 서울구치소에서 실형을 살고

2005년과 2006년은 군생활로 프로무대를 떠나있었다.


뭐 이 부분은 어느 누구도 쉴드치지 못할 부분이지만

서울구치소 시절 하루에 팔굽혀펴기 1,000개를 하며 몸을 만들었다고 하니

한순간의 잘 못된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뛰어났던것 같다. 

 

이적 후 첫해인 2013년에는 경기수는 삼성 시절과 비슷하게 던졌고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역할을 다 했지만

이듬해인 2014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25경기 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이후 위암 판정을 받아 위암 수술까지하며

선수생활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LG 팬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왜 정현욱은 안나와? 왜? 먹튀야? 등등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는 병마와 엄청나게 싸우고 있었다.


결국 그는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2016년 1군 마운드에 복귀했다.

그런 그의 스토리를 알게 된 팬들은 그의 위 전제로 야윈 얼굴, 변화된 몸과 열정에 감동했고 응원했다.


2012년 LG와 체결했던 계약이 만료되는 해가 2016년인데

재계약이 아닌 은퇴를 선택한 정현욱


선수시절 초창기부터 엄청난 활약을 하며 떠올랐던 스타는 아니지만

묵묵히 노력하며 중간에서 위기 상황마다 최선을 다해 묵직한 공을 던져대던 모습은 잊기 힘들 것 같다.


 웃음이 나오냐로도 유명한 정현욱 선수

은퇴 이후는 더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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